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술을 생산하는 나라와 지역들은 국가나 협회에서 생산 규정을 강제해 품질 저하를 막는다. 하지만 생산자가 관계 법령보다 가혹하게 자사 생산 규정을 높여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술의 등급을 일부러 낮춰 표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 말은 ‘이보다 더 가성비가 뛰어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라뇨 사부랑 – No.4 V.S
코냑은 최고급 스피릿답게 지구상에서 가장 생산 규정이 까다로운 브랜디다. 등급 역시 아주 촘촘하게 나뉘어 있는데 숙성기간에 따라 V.S(2년 이상), V.S.O.P(4년 이상), 나폴레옹(6년 이상: 비공식 등급), X.O(10년 이상), X.X.O(14년 이상) 등으로 표기한다. 그러니까 라뇨 사부랑의 V.S는 2년 이상 숙성한 코냑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 칼럼에 등장할 수 없었겠지? No.4라고 적혀있듯이 4년 숙성한 원액을 담았다.이렇게 생산자 마음대로 등급을 높여 표기하는 건 불법이지만, 낮춰 표기하는 것은 합법이다. V.S 등급은 우리나라에 잘 수입도 안 될 정도로 낮은 등급이지만, 실제 V.S.O.P와 동일한 기간 숙성했기에 표기된 등급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품질을 보여준다.
라뇨 사부랑은 병입하는 모든 원액의 재료가 되는 포도를 자가 소유한 밭에서 직접 재배하며, 밭의 등급도 1급 밭과 그랑크뤼뿐이다. 2023년 국제 주류 품평회 IWSC에서 98점을 획득하며 4개의 메달을 받은 술이다.
🥃 백 건포도와 캐러멜, 호두의 아로마. 서양배의 지배적인 풍미와 아몬드, 토피 캐릭터. 바닐라와 커스터드의 피니시를 지녔다. 크림 브륄레와 환상의 궁합을 보여준다.
꽁뜨 조르쥬 드 보귀에 – 샹볼 뮈지니 프리미에 크뤼
부르고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테루아 중 하나는 샹볼 뮈지니다. 샹볼 뮈지니에는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 생산되는 특급밭 뮈지니가 있는데, 이 밭의 가장 넓은 면적을 소유한 생산자가 바로 꽁뜨 조르쥬 드 보귀에다. 뮈지니에서 생산된 와인들은 자랑스럽게 라벨에 ‘Musigny Grand Cru’라는 표기를 하는데, 보귀에는 뮈지니에서 수확한 포도로 다른 라벨을 하나 더 만든다. 바로 사진의 샹볼 뮈지니 프리미에 크뤼다. 프리미에 크뤼는 1급밭으로 뛰어난 와인이 생산되지만, 그랑크뤼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왜 보귀에는 굳이 등급을 낮춰 싸게 판매하는 걸까? 그 이유는 뮈지니에 식재된 포도나무 중 수령이 좀 더 어린 것을 이 라벨에 쓰기 때문이다. 새오크통의 사용 비율도 뮈지니 라벨에 비해 10%쯤 낮다. 하지만 와인은 엄청나게 강건하고, 초장기 숙성형을 지향한다.
🍷 뮈지니의 이름난 생산자들이 만드는 와인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이 와인을 먼저 맛보는 게 경제적인 선택이다. 참고로 20년은 지나야 시음 적정기에 접어든다.
비온디 산티 – 로쏘 디 몬탈치노
바롤로와 함께 최고급 이탈리아 와인의 양대산맥으로 평가받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작황이 좋지 않은 해에는 출하를 하지 않는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생산하는 와이너리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급 와인인 로쏘 디 몬탈치노도 항상 함께 만드는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출시하지 않은 해에는 해당 포도를 전량 로쏘 디 몬탈치노의 재료로 쓴다. 안 좋은 빈티지에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보니 해당 빈티지의 로쏘 디 몬탈치노가 일반적인 해보다 품질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생산을 위한 나무에서 자란 포도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평년 것보다 수령이 높거나 더 좋은 구획에 위치한 나무의 포도이기 때문에 좀 더 복잡하거나 섬세할 수는 있을 거란 상상이 가능하다.
🍷 비온디 산티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상징하는 가장 위대한 생산자다. 로쏘 디 몬탈치노 역시 그러하며 이들이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생산하지 않은 가장 최근의 빈티지는 2002와 2014다.
출처 : gqkorea, by 김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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